[칼럼] 고창 수박시험장 청년 연구사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작성자: 한국시사일보사님    작성일시: 작성일2026-09-24 16:35:29    조회: 203회    댓글: 0건
고창 수박시험장 청년 연구사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글쓴이: 이호진 상명대학교 특임교수

나는 오랫동안 청년회의소와 여러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며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해 왔다. 청년들의 취업과 창업, 진로와 직무에 대한 상담과 컨설팅을 하면서 수많은 청년들의 고민과 좌절,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래서 고창 수박시험장에서 근무하던 20대 청년 연구사가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가슴이 아팠고, 동시에 화가 났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바라보며 누군가 한 사람을 성급하게 지목해 책임을 돌리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특정 세대의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도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위험신호가 있었는데, 조직은 왜 멈추지 못했는가.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고인은 올해 휴일을 포함해 초과근무가 기록된 날이 상당히 많았으며, 사망 직전에도 이른 아침 출근과 늦은 퇴근이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인력 공백으로 인한 업무 증가와 야간 업무 연락 등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현재 관련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근무환경이 고인의 죽음과 어떤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조사 결과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것과 조직의 근무환경 관리가 적절했는지를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조직에 질문하고 싶다.

초과근무가 장기간 반복되고 있었다면 관리자는 이를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직원의 전출이나 교육, 휴직 등으로 인력 공백이 발생했다면 그 업무는 어떻게 재조정했는가.

한 사람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업무를 축소하거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절차는 있었는가.

늦은 밤이나 휴일에 이루어진 업무 연락은 정말 긴급한 것이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조직은 답해야 한다.

초과근무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조직에는 수많은 기록이 존재한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기록되고, 초과근무 시간이 기록되며, 휴일근무 역시 남는다.

그러나 기록이 존재하는 것과 그 기록을 조직 관리에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직원의 초과근무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수당 지급을 위한 숫자가 아니다.

조직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위험신호다.

한두 번 늦게 퇴근하는 것과 장기간 반복되는 초과근무는 다르다.

특히 새벽이나 이른 아침 출근과 밤늦은 퇴근이 반복된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관리자가 개입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가.”

“업무량이 적절한가.”

“다른 직원과 업무를 나눌 수 없는가.”

“지금 꼭 해야 하는 업무인가.”

이 질문이 조직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일을 줄여야 한다.

관리란 일을 더 시키는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관리다.

가장 위험한 것은 과도한 업무가 ‘일상’이 되는 순간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어떤 조직이든 바쁜 시기가 있을 수 있다.

연구기관은 업무 특성상 일정에 따라 야간이나 휴일근무가 필요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농작물 연구라면 생육이나 기상조건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만 업무를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이 무제한적인 노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조직 구성원들이

“우리 조직은 원래 그렇다.”

“연구직은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다른 직원도 다 그렇게 일한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조직은 그것을 정상이라고 착각한다.

나는 이것이 조직문화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만 조직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관행이 오히려 사람을 더 오래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는 개인의 선의나 배려를 넘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성과뿐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조직에는 책임자가 있다.

책임자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사업성과만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산 집행만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다.

연구과제의 실적만 관리해서도 안 된다.

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량과 근무환경 역시 관리해야 한다.

특정 직원의 초과근무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확인해야 한다.

인력 공백이 발생한다면 업무량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업무가 특정인에게 집중된다면 재배분해야 한다.

직원이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먼저 묻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젊은 직원일수록 조직에서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취업한 직장에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을까 걱정할 수 있다.

선배나 동료에게 부담을 줄까 봐 참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힘들면 말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조직은 직원이 한계에 도달한 뒤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위험신호를 발견하고 개입한다.

이번 감사는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감사에서 책임소재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업무를 부당하게 집중시킨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과도한 초과근무를 알고도 방치했다면 그 역시 확인해야 한다.

부적절한 야간 지시나 조직 내 부당한 관행이 존재했다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몇 사람에게 징계를 주는 것만으로 사건이 끝나서도 안 된다.

감사에서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은 왜 조직 시스템이 위험신호를 발견하지 못했는가이다.

실제 인력과 정원은 적정했는가.

인력 공백이 발생했을 때 업무는 어떻게 재분배됐는가.

고인의 업무량은 동료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였는가.

관리자는 초과근무 현황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가.

업무를 줄이거나 조정한 기록은 있었는가.

야간과 휴일 업무연락에 대한 기준은 있었는가.

직원이 업무 과중을 호소할 수 있는 고충처리 통로는 실제로 작동했는가.

상급기관은 이러한 인력과 업무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해야 사건의 본질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이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나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한 청년 연구원의 안타까운 죽음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건을 통해 문제가 확인된다면 반드시 제도로 바꿔야 한다.

초과근무가 일정 기간 또는 일정 시간을 넘어서면 관리자가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초과근무를 승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원인을 확인하고 업무를 조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전출이나 휴직, 교육 등으로 인력 공백이 생긴 경우에도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단순히 나누어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업을 줄이고, 일정을 늦추고,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야간이나 휴일 업무연락 역시 긴급업무가 아닌 경우에는 최소화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직속 상사를 통하지 않고도 업무 과중이나 조직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고충처리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관리자 평가 역시 달라져야 한다.

많은 사업을 수행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것만이 좋은 관리의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구성원이 소진되지 않도록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 역시 관리자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돼야 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버텨라’가 아니다

나는 오랫동안 청년들을 만나왔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도 만났고 어렵게 취업한 뒤 조직생활 때문에 고민하는 청년도 만났다.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한 만큼 존중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힘들 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니다.

모든 조직이 구성원에게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래서 청년에게 또다시 “조금만 더 견뎌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청년의 인내심을 키우는 것이 조직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한계까지 버티도록 하는 것이 좋은 조직문화도 아니다.

누구의 잘못인가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밝혀야 한다

나는 아직 이번 사건에서 정확히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단계에서 특정인을 지목해 단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철저한 조사와 감사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공개된 상황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위험신호가 있었는데 왜 조직은 멈추지 못했는가.

초과근무 기록이 있었다.

인력 공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야간 연락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조직이 설명해야 한다.

한 직원의 업무부담을 조직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관리자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조치를 했는지.

그리고 왜 충분하지 않았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다.

잘못된 시스템이다.

개인의 책임이 확인되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직문화의 문제가 확인되면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인력부족이 문제였다면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지는 조직의 모습이다.

나는 청년 활동가로서 이 사건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겁다.

청년들에게 취업과 창업을 이야기하고 꿈과 미래를 이야기해 온 사람으로서, 어렵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한 청년이 일터에서 힘들어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슴 아프다.

청년정책은 청년을 취업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까지가 진짜 청년정책이어야 한다.

한 청년의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성급하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정확히 묻고,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것.

그리고 다시는 어느 조직에서도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혼자 짊어진 채 버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

그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와 조직이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작성자: 한국시사일보사님    작성일시: 작성일2026-09-24 16:35:29    조회: 203회    댓글: 0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